😬비속어 주의😬 그녀는 언제 미친X이 될까

#민희진 #하이브 #기자회견 #뉴진스

2024. 4. 29.

[그녀는 언제 미친년이 될까]

#1 내가 가장 사랑하는 천재가 미친 여자가 된 날

“이 개저씨들이 나 하나 죽이겠다고”

“저 3일 동안 미친년 됐던 것 아시죠?”

“이 업계에는 시발 새끼들이 너무 많아.”

“하이브가 저를 다 빨아먹고 배신했다고 생각해요.”

“아 근데 저 마음 약해요. 마음 약하니까 씨발 이렇게 열받는 거지”

2024년 04월 25일 목요일, 어느 미친 사람이 기자회견에서 한 발언이다. 내가 가장 애정하는 천재가 한 말이기도 하고. 하지만 그날 실시간 SNS 트렌드에는 한동안 ‘미친 여자’만이 떠있었다.

#2 그 천재들은 왜 다 남자였을까

빈센트 반 고흐, 스티브 잡스, 에드바르 뭉크,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이브 생로랑, 앨런 튜링

모두 내가 애정하는 천재들이다. 다들 천재를 좋아라 하는 것 같긴 하지만, 나는 재능있는 이들, 특히 천재들에게 유난히 매력을 느끼는 편이다. 그 중에서도 앞서 말한 이들을 유독 좋아하는데 난 이들을 반골 유형의 천재라고 부른다. 이들은 몇 가지 공통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로 그가 속한 업계의 패러다임을 바꿀 정도의 천재라는 것이다. 그들은 본래 있던 것을 잘 갈고 닦을 뿐만 아니라 일종의 변혁을 일으킨다.

두 번째로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대부분 너무 감정적이라거나, 히스테리컬하다거나, 현실성이 없고 사회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혹자는 이에 대해 천재들도 부족한 부분이 있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난 그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편이다. 난 그걸 능력의 부족이라기보다는 유별난 성향으로 본다. 재능이 뛰어날수록 그 영역에서의 안목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안목은 유난히 낮은 역치를 부른다. 예를 들어 후각이 뛰어날수록 역겨운 냄새에 보통 사람보다 배로 고통스러워하며 참기 어려워 한다. 이런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불행하기 쉽고, 이해 받기 어렵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사소한 혹은 당연한 일에도 소위 ‘지랄’을 떨기 때문이다.

세 번째 공통점, 이들은 모두 남성이다. 희한하다. 이런 유형의 여성 천재는 긴 역사 속에 정말 없었던 것일까? 그건 통계적으로, 과학적으로 사실이기 힘들다. 설사 남녀 비율에 차이가 있을 순 있어도 이렇게 없을 순 없다. 그럼 뭘까?

#3 미친년이 되어 사라진 그녀들

정말 한 명도 없었을까하고 곰곰이 되짚어 보니, 여성이 이런 반골 유형의 천재일 경우 보통 ‘미친년’이 되어 사라져 있었다.

당연한 일이다. 남성일 때도 이런 천재들은, 눈엣가시로 취급 당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성이 이러면 누가 그 꼴을 두고 보겠나. 둘 중 하나다. 미칠 때까지 미친년으로 취급하거나, 안 미쳤지만 미친년으로 죽게 만들거나. 예를 들어 근현대 천재 미술가이자 문학가였던 나혜석, 모더니즘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한 명인 버지니아 울프, 와이파이의 토대를 만들어낸 발명가지만 섹스 심볼로만 소비되었던 배우 헤디 라마르, 피카소가 착취한 예술가 도라 마르가 있다.

#4 첫사랑니 같은 천재

민희진, 그녀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쭉 내 변하지 않는 최고의 천재이자 롤모델 중 한 명이었다. 저질 체력임에도 그의 강연을 듣느라 1시간이 넘게 서있을 만큼, 그가 디렉팅한 뮤직비디오에 대해 누군가의 논문에 언급될 정도로 장문의 글을 쓸만큼, 그리고 평범한 회사원인 지금도 다이어리에 ‘내가 민희진이라고 생각하고 일하자’라는 말을 두 번이나 적었을 만큼 그를 동경했다. 그의 재능은 내가 사랑하는 케이팝씬의 공식을 비틀어가며 가장 독보적인 변화를 이끄는 동시에 대중의 열망까지 이끌어냈으니까. 즉 나에게 그는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반골 천재 중 최초의, 유일한 여성이었다.

#5 미수에 그친 ‘미친년’ 만들기

그런데 최근 그런 그녀마저 미친년으로 내몰릴 수 있는 사건이 일어났다. 일련의 사태에 대한 그녀가 무결함을 주장하는 게 아니다. 그녀의 재능과 업적이 회사를 상대로 배임을 했을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 단 며칠만에 모두 평가절하될 뻔 했던 게 사실이라서 하는 말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녀답게 상상치 못한 방법으로 위기를 모면했다.

“그냥 들어올거면 나한테 맞다이로 들어와. 비겁하게 뒤에서 지랄 떨지 말고”

그녀는 대한민국 최초로 기자회견에서 그가 속한 조직을 향해 욕을 남발하고, 거침없는 날 것의 공격성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아주 다행히도 이 전략은 많은 직장인의 공감을 사며 대중에게 먹혔다. 당일 입었던 의상이 완판 되는 등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며, 그녀는 최초로 ‘미친년’이 아닌 ‘미친 (재능의) 여자’로 살아남았다.

#6 이번만큼은 천재가 미친년으로 사라지지 않기를

하지만 아직도 나는 두렵다. 지금은 여론이 그녀의 편이 된 것처럼 보이지만,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천재에 대한 개인적인 애정으로 무조건 적인 편을 드는 게 아니다. 여성도 그에게 어떤 흠결이 있을지라도 재능은 재능으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천재 아니면 미친년이 되는 게 아니라 미친 천재년도 있다는 것이다. 평범한 범인으로서 이런 우려를 한다는 게 웃길 수도 있지만, 과연 그럴까? 그러기에 우린 너무 많은 미친년을 만나지 않았나? 난 아직도 그녀마저 단순히 미친년으로 사라지진 않을까 두렵다.